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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기 중사, SBS 궁금한이야기Y 이광우 PD에 감사..21년 전 그날, 자살조작 의혹에 관한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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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숙 기자
기사입력 2015/12/07 [12:19]

[월드스타 김용숙 기자] SBS '궁금한이야기Y'는 4일 밤 8시 55분 박준기 중사 자살조작 의혹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했다.

 

'궁금한이야기Y' 는 최근 실제로 일어난 사건 중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궁금한 이야기Y'는 이날 290회 '잃어버린 기억 속 진실 찾기, 박 중사는 왜 두 다리를 잃게 되었나'(PD 이광우)라는 제목의 방송을 했으며, 이 내용은 SBS 궁금한이야기 Y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 SBS '궁금한이야기Y-잃어버린 기억 속 진실 찾기, 박준기 중사는 왜 두 다리를 잃게 되었나' 방송 화면.  © 월드스타

 

21년 전, 군에서 중사로 근무하던 박준기 씨는 술자리 후 대학 동기였던 나 씨(가명)를 태우고 운전을 하던 중 가드레일을 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나 씨가 크게 다치자 박준기 중사는 직접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런데 나 씨가 회복 후 본 박준기 중사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멀쩡하게 사고를 수습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의식을 잃은 채 심각한 상태로 발견된 것.

 

전화를 하겠다며 잠깐 자리를 비운 박준기 중사.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준기 중사가 경비원에 의해 발견된 곳은 후배 나 씨가 응급수술을 받은지 불과 두 시간 후 병원 3층의 옥상에서였다.

 

당시 몸 구석구석에서 골절부위가 발견됐고,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나온 군 헌병대는 해당 사고를 박준기 씨가 무면허 음주교통사고로 인한 죄책감으로 벌인 자살 시도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박준기 중사는 사고 당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둔 상태로 자살을 시도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한편, 박준기 중사는 이날 사고 후유증인 골수염으로 2007년 왼쪽, 2011년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는데..

 

SBS '궁금한이야기Y' 제작진은 최근 박준기 중사를 포함한 증언, 법의학 전문가, 군 검찰 관계자, 박준기 중사 대학 동기, 영상분석 전문가 등과 만나 21년 전 박준기 중사가 군으로부터 받은 억울한 사연에 대한 진실찾기에 돌입했다.

 

다음은 'SBS궁금한이야기Y' 팀이 지난 4일 보도한 '잃어버린 기억 속 진실 찾기, 박 중사는 왜 두 다리를 잃게 되었나' 방송 [녹취록].

 

박준기:  1989년 2월 28일 하사관으로 입대를 해서 1991년 11월 중사 진급하고..

 

허수경:  육군 중사였던 박 씨는 군 복무 중이던 21년 전 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다고 했습니다.

 

박준기:  11일 동안 있다가..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났는데) 골반 쪽이 금이 가고 양쪽 발목은 다 압궤상으로 해서 부서졌는데 사고 나기 한 4, 5개월 전부터 제가 기억을 다 잃어버렸어요

 

허수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씨가 사고 직전까지 함께했었던 이가 있습니다. 바로 대학 동기 나씨(가명)인데요..

 

나건수 가명(박준기 씨 대학 동기):  삼겹살 뷔페 집에서 소주 2병, 맥주 3병 정도 를 서로 나눠 먹고, 휴게소 앞에 차를 세우고, 돌아보니까 내 운전 석에 중기 형이 앉아 있는 거예요

 

허수경:  술을 마시고 대학동기의 차를 운전한 박 씨는 운전 미숙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답니다.

 

나건수:  제가 크게 다치고 병원 매트에 옮겨준 상태에서 (준기 형이) 어딘가 전화한다고 하고 나갔어요.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허수경:  그 뒤 나 씨가 응급수술을 받는 사이, 건물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작진:  선생님(박준기 중사 대학동기 나건수 씨)은 뭐가 가장 궁금하세요?

 

나건수:  멀쩡하게 전화하러 가서 죽을 정도로 다쳐서 왔으니까..

 

허수경:  멀쩡하게 걸어서 병원에 온 박 씨가 어쩌다 양쪽 다리를 모두 잃게 됐는지는 나 씨도 의문이라는데요..

 

21년 전인 1994년 12월 17일 비극은 이곳(춘천성심병원)에서 시작됐답니다.

 

[춘천 성심병원]

 

박준기:  저쪽 면 끝이거든요

 

허수경:  기억이 사라졌다는 박 씨가 자신이 쓰러진 장소를 정확히 지목했는데요

 

박준기:  중사 거기에서 지금 이 아래, 옥상으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허수경:  그는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당시 기록에 이유까지 나와 있다는 겁니다

 

박준기:  헌병대 조서 내용에 교통사고 자책감 때문에 자살목적 투신 이렇게 돼 있습니다

 

허수경:  박 씨가 병원 3층 옥상에서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군 헌병대는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는데요

 

[조서 내용: 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동 병원 10층 성당 유리창 문을 열고 15미터 아래 상층 옥상 위로 투신하여 창문 틀에 피의자가 잡았던 흔적으로 추정되는 손가락 자국이 나타나 있었으며..]

 

허수경:  그는 병원 10층 성당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경비원의 진술과 박 씨가 쓰러져 있던 장소가 추락 예상 지점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그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박준기:  당시에 제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거든요.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 음주 운전했다고 제가 자살을 하겠느냐고요

 

허수경:  하지만 기억을 잃은 박 씨는 군 조사 결과를 부인할 수도 없었답니다

 

박준기: 골수염이 이렇게 올라오니까..그렇게 되면 절단하는 데(부위)가 점점 더 올라오게 되잖아요.. 그래서 (의족으로 걸을 수 있게) 절단술을 하는 거예요.. 두 다리를 다 잃게 되니까 그 충격때문에 2011년 말에 기억을 완전히 찾았어요

 

허수경:  남은 다리마저 절단하고 나서야 돌아온 기억. 그것은 그가 상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답니다.

 

박준기:  헌병이 저를 데리고 본관 안쪽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제가 반항하자) 수사관이 데리고 가는데 반항해? 그러면서 제 명치를 찬 거예요. 그래서 계단으로 추락하면서 제가 몸을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허수경:  헌병조사관의 폭행을 주장하는 박 씨. 그의 투신을 주장하는 군 수사기관.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그런데

 

박준기:  이 창문 틈으로 이렇게 해서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가 없잖아요

 

허수경:  21년 전 의식을 잃고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던 박준기 중사. 당시 군은 그가 병원 건물 10층 성당 창문에서 투신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기억을 되찾은 박 씨는 군 헌병대 폭행 후 2차 가해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쩌다 두 다리를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박씨는 두 다리를 잃게 만든 21년 전 사고가 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병원 계단에서 헌병에게 폭행당한 뒤 2차 상해를 입고 병원 옥상에 유기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군은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박 씨가 자책하며 병원 10층 성당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확신합니다. 그날 밤 박 씨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는 군 수사기관에서 추락장소로 지목한 병원 건물 10층 성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금은 성당 사무실로 바뀌었지만, 창문은 21년 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성당 관계자의 허락을 받아 창문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 병원 성당 창문 조사 중]

 

제작진:  걸리네.. 걸쇠를 걸어놨네

 

허수경: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 개방폭이 고정되어 있는 겁니다. 그 틈을 측정한 결과

 

제작진:  14cm예요

 

허수경:  올해 초 박 씨가 방문했을 때도 창문은 13cm 정도만 열렸다고 합니다. 혹시 박 씨 사고 이후 일부러 줄인 걸까요?

 

병원 시설 관리 담당자:  1986년,1987년도에 (창문 개방 폭을) 줄였어요. 줄이게 된 동기가 내 머리가 들어가더라고.. 애들은 떨어지겠다.. 그래서 줄인 거예요. (병실) 전체를 (창문 개방 폭을) 반으로 줄였어요

 

허수경:  병원 개원부터 시설 관리를 해온 직원은 수십칠 년 후 성당 창문의 개방 폭은 13cm에서 변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에 박 씨는 군을 비롯한 정부 기관에 수십 차례 재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1월. 박 씨는 21년 만에 군 조사단에 현장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11월 17일 조사 현장]

 

군 검찰 관계자: 얼마 전에도 저희 조사 본부에서 실측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고서에도 24cm로 나와 있기 때문에

 

허수경: 창문 개방 폭이 쟁점이었습니다. 군은 10층 성당이 아닌, 일반 사무실의 개방 폭인 24cm를 고집했습니다. 동일한 창문 구조이기 때문이라는데요.. 결국 현장조사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중단됐습니다.

 

우리는 사고 다음 날 군이 촬영한 현장 사진을 전문가에게 의뢰해 3차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황민구 영상분석 전문가:  (창문개방 폭은) 21cm 내외로 분석이 됐고요

 

제작진:  대략 (개방 폭이) 24cm도 가능한가요, 아니면?

 

황민구 영상분석 전문가:  지금 측정했을 때는 24cm까지는 거의 나오지 않고, (오차범위를 하더라도) 나오더라도 23cm까지

 

허수경:  초동수사 당시 군에서도 창문 개방 폭을 21cm로 명시했습니다. 우리는 당시 병원 10층 성당에 설치된 창문과 동일한 구조의 창문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창문 개방 폭을 다르게 해서 통과 여부를 확인해보기로 했는데요. 박 씨와 체격이 비슷한 남성(키 175cm, 몸무게 75kg)은 과연 창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가 실제 측정한 대로 창문 개방 폭을 14cm로 고정했을 때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창문 틈으로 머리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이번에는 군의 초동수사를 근거로 21cm로 창문 개방 폭을 조절했습니다. 발부터 빠져나가는 것은 실패. 머리는 통과했지만, 창문 틈에 어깨가 걸리고 맙니다. 군의 초동수사가 맞다면, 박 씨는 어떻게 21cm만 열린 창문에서 떨어진 걸까요.

 

마지막으로 최근 군이 주장하는 24cm로 창문을 열고 실험해봤습니다. 머리와 어깨까지는 간신히 통과했지만,

 

실험맨:  몸이 끼니까

 

허수경:  몸통이 빠져나오는 건 무리였는데요

 

박승범 물리학자: 24cm 정도 되면 (창문 개방) 폭하고 신체 폭이 거의 같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서 움직여져야 사람이 빠져나갈 텐데, 그 움직임을 형성할 수가 없다는 거죠. 신체의 폭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창문 개방 폭이 )형성돼야 하니까 못해도 한 30cm 이상은 열려 있어야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허수경:  실제로 창문 개방 폭이 30cm가 돼서야 창문을 빠져 나가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2008년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 결과에는 창문 개방 폭이 30cm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문 개방 폭에 대한 군의 조사 결과는 매번 달라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병원 시설관리 담당자 (창문이): 30cm 열리는 건 없어요. 그렇게 되면 옆에 바를 잘라서 시설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30cm여 는 건 힘들어요.

 

[계속 열리는 의혹들]

 

허수경:  그뿐만이 아니랍니다.

 

병원 시설관리 담당자:  철문이 있었어요 중간에. 그래서 저녁이나 이런 때는 여기 안내분들이 잠가요 성당이니까.

 

허수경:  군의 주장대로라면, 박 씨는 잠겨 있는 철문을 열고 성당으로 들어가 21cm의 창문 틈으로 뛰어내린 겁니다. 가능한 일일까요?(10:10) 납득할 수 없는 군의 조사 결과에 끊임 없는 물음만을 반복하며 박 씨는 21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목욕 장면]

 

제작진:  여기(박준기 중사 무릎 위 상처)는 왜 그런 거예요?

 

박준기:  (의족이) 이 부분에 닿으니까요. 닿아서 여기 마찰이 되고 그래서 벗겨지고..

 

허수경:  그날 밤 그가 기억하지 못한 사고로 잃은 것은, 두 다리만은 아니었습니다. 박 씨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떠나 보내고,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그의 곁에 남은 사람들은 오직 가족 뿐입니다.

 

어머니 김근례 씨(74):  제일 안타까운 건 밤에 자다가 화장실이라도 갈 때 그 의족을 다시 신고 간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허수경:  사고 이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답니다.

 

어머니:  그래도 한 쪽만 그랬을 때(다리 절단 수술)는 몰랐는데 두 쪽 다 그랬을 때는 정말.. 내 살이라도 끊어서 이식해주고 싶었는데 너무너무 (오열)

 

허수경:  아들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기에 어머니는 그날의 진실을 꼭 알고 싶습니다. 박 씨의 의료기록을 통해 사고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지는 않을까요?

 

유성호 교수(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다리뼈라든지, 허리뼈 그리고 골반 뼈의 골절이 또 압박골절까지 동반된 것을 보면, 거대한 외력이 일시적으로 작용한 추락에 합당한 소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수경:  추락은 분명하답니다. 그런데 투신이라기에는 뭔가 부자연스럽다는데요

 

유성호 교수 7층 높이에서 생존하셨다는 거 자체도 이례적이고, 자살 손상을 하려면 보통 넓은 곳에서 하는 게 일반적이죠. 이렇게 굉장히 좁디좁은 창문을 통해서 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허수경 그러고보니 박 씨 사건을 재조사했던 국민권익위원회 자료 중 묘한 증언 하나가 눈에 띕니다.

 

[자료화면 : OOO 의료인 경위 진술서]

 

허수경:  사고 당시 박 씨를 이송했던 의료진 중 한 명이 그가 쓰러져 있던 장소가 출입문에서 오른쪽으로 여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고 말한 겁니다. 이는 군 헌병대가 조서에 기록한 곳과는 10여 미터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찾고 싶다 그날의 진실]

 

제작진:  누구 먼저 보는 게 좋을까요?

 

박준기:  홍○○ 씨요. 발견했다고 한 게 홍영O 씨니까.

 

허수경:  우리는 수소문 끝에 쓰러진 박 씨를 처음 발견했다는 경비원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면 박 씨를 발견한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줄 겁니다

 

[홍○○ 씨 집 도착]

 

제작진:  서울 SBS방송국에서 왔는데요. 뭐 좀 물어보려고요

 

홍○○ 씨 가족:  SBS에서 왜요?

 

제작진:  박준기 중사님 사고 났던 거 있잖아요

 

가족:  아우 그게 또 왜요? 아우~~~ 그이(박준기 중사)도 안타깝겠지만 그게 끝이에요. 우리 아저씨는 사람 살려줬다고 좋아했었는데 이건 이래서 신고나 하겠어요. 우리 아저씨 솔직히 말해 정신도 흐려요. 그런데 자꿈 갖다 물으면 뭐해.

 

허수경:  생각지 못한 문전박대에 박 씨의 심경은 복잡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데요.

 

박준기:  제가 확실히 기억하는 건, 헌병이 저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그 계단에서 저를 폭행해서 제가 계단을 추락하면서 의식을 잃었다는 겁니다.

 

제작진:  선생님을 가해했다?


박준기:  예


제작진: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박준기:  출동했던 손○○ 하고 김○○ 중의 김○○ 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수경:  박 씨는 돌아온 기억 속에서 자신을 폭행했던 헌병 조사관이라면 그날 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박 씨가 말한 헌병조사관을 찾아 나섰습니다

 

[당시 헌병 조사관 집 도착]

 

제작진:  계세요? 김○○ 씨 계시나요?

 

집주인:  맨날 경찰서에서 찾아오는데.. 몰라요 저는, 이사 간 지 꽤 됐어요

 

제작진:  헌병대 출신이라고 혹시 이 주변에?

 

집주인:  헌병대 출신이요? 없는데 저도 군 출신인데

 

허수경:  그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요

 

제작진:  (전화) 김OO선생님 되세요?

 

김○○:  네

 

제작진:  혹시 박준기 선생님 아세요?

 

김○○:  당시 출동했던 헌병수사관 모르겠는데요

 

제작진:  예전에 혹시 박준기 중사 사건 관련해서

 

김○○:  뚜뚜뚜(일방적으로 전화 끊어버림)

 

허수경: 사고현장에 직접 나가 조사를 담당한 것이 분명한데 박 씨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와 동행했던 또 다른 헌병은 어떠할까요?

 

제작진:  (통화) 그때(현장에) 같이 나가셨다고 얘기하시던데

 

손○○(당시 출동했던 또 다른 헌병조사관):  그때 나갔었는데 수사에 관련해서는 제가 뭐라고 답변을 못 드리겠습니다. 육군본부나 이쪽에 질의를 하셔서..

 

허수경:  박 씨를 처음 발견한 경비원도 그의 사고를 조사한 헌병조사관들도 모두 입을 굳게 다뭅니다. 우리는 박 씨 사고에 대한 의문들을 국방부에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육군본부 도착]

 

제작진:  초동수사 때는 21cm라고 나와 있는데 이번에는 또 24cm라고

 

군 검찰 관계자:  때에 따라 21cm가 나오기도 하고,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24cm에 근접할 수도 있고 제일 많이 쟀을 때는 30cm가까이도 나올 수 있는데..

 

허수경:  재보니 그때그때 달랐다는 겁니다. 국방부도 창문 개방 폭은 확인할 수 없다는데요.

 

제작진:  박준기 씨가 진술한 건가요? 자기 죄책감 때문에 투신을 했다라고?

 

헌병대 수사 관계자:  그 부분까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제작진:  (그럼) 지문채취나 혈흔 같은 거는 어떻게 그때 했나요?

 

헌병대 수사 관계자:  그걸 직접적으로 채취를 해서 감정까지 한 부분은 수사 기록 상에는 명시가 안 돼 있어요

 

군 검찰 부장:  근데 이게 최초 수사에 정확하게 문젯점이 있다고 지적을 하기가 어려워요.. 저희도 뭐 풀어드리고 싶죠. 그분이 억울해하시니까.

 

허수경:  지문 채취도, 혈흔 감식도 하지 않았는데 초동수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정말 재수사 의지가 있기는 한 걸까요?  청춘을 고스란히 군에서 보낸 박 씨. 한땐 그가 충성을 다했던 군은 그에게 자살, 투신이라는 오명만을 안겨줬습니다. 그렇게 21년의 세월이 흘렀고, 혈기 왕성하던 청년은 중년이 돼버렸습니다.

 

[박준기 중사 방]

 

박준기:  (벽에 걸린 액자를 보이며) 진급 방패예요

 

허수경:  아직 군에 미련이 남은 걸까요

 

박준기 중사(45)/군 복무 중 두 다리가 절단된 남자: 다 버렸는데 저것(진급 방패 등 액자)만 남았죠

 

제작진:  저기 보면 '조국은 너를 믿노라'라고 쓰여 있는데 믿음이 있으세요?

 

박준기:  조국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군에 대한 믿음은 없습니다

 

허수경 어쩌면 군과 박 씨가 바라는 것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것. 그 시작은 군이 잘못을 부정하고 덮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바로잡는 일부터일 겁니다.

 

[21cm 24cm 30cm 언제까지 창문만 열 건가요? 진실의 문은 지금 몇cm 열렸나요..]

 

한편, SBS '궁금한이야기Y' 팀의 이광우 PD 등 제작진은 21년 전 박준기 중사가 겪어야 했던 억울한 진실을 찾기 위해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라도 군산과 강원도 춘천을 오가며 적극적인 취재 활동에 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준기 중사는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저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시기 위해 전력을 다하신 이광우 PD님과 SBS 방송국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쌀쌀한 계절, 감기로 고생하시지 않도록 건강 잘 챙기시고, 이 땅 위에 소외되고 억울하신 분들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이광우 PD님과 SBS 방송 관계자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드린다"라고 인사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국방부 한민구 장관이 지난 국방위에서 국방위 위원들에게 약속했던 박준기 중사 자살조작 의혹에 관한 명료한 조사 전개다.

 

국방부의 양심적이고, 진정한 조사 과정과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월드스타 김용숙 기자] w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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